호세아 13장
"내가 광야의 마른 땅에서 너를 알았거늘.."(5절) 광야의 마른땅은 말그대로 생명이 피어날 수 없는 곳이죠, 이곳에서 주님이 이스라엘을 만났고, 이스라엘은 간신히 생명을 피워냅니다. 우리들이 기억하는 것은 늘 가장 좋을때, 소위 전성기때가 기억이 나고, 가장 고생스러운 때가 기억에 나죠. 요즘 한국에서는 "라떼"라는 말이 있습니다. 커피라고요? 아니에요. 뒤에 한문장이 더 붙어야 하는데 "라떼는 말이야.."입니다. 꼰대라고 불리는, 즉 연장자 혹은 개인적인 기질이 늘 누군가에게 과시하기 위한 간섭으로 시작하는 잔소리들이 나중에 "나때는 말이야.."라는 말로 꼰대를 비꼬는 말이 "라떼"입니다. 이 비꼬음의 역사는 한국사회가 좀더 개방적이고, 자기 목소리, 자기 개성을 중요하시 하는 사회로 바뀌면서 시작된듯합니다. 군사문화, 일제의 잔재인 계급과 지휘문화에 익숙했던 세대들은 늘 선배, 연장자, 혹은 사회적 지휘자가 요구하는 방향대로 삶을 살아야 바로 사는 것으로 인식하던 시절이 있었죠. 사람마다 다르고, 환경도 다르고, 주어진 현실이 다른데, 여기에 "나때는 말이야.."이런 말을 하면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잘 듣지도 않고, 꼰대로 낙인 찍힙니다. 그런데, 꼰대 입장에서는 표현이 서툴러서 그렇기도하고, 늘 자신이 경험한것을 그대로 하다보니, 꼰대의 꼰대의 대를 이을뿐, 자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 고난과 환란을, 혹은 전성기를 다시 기억해내고, 드러내 보이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할 수 있겠죠. 대한 민국 남자들이 특히 군대 이야기를 하면 이 과시는 과장되어지고, 포장되어지기 마련이죠. 이런 점에서 보면, 호세아서는 과장과 포장이 아닌 드러냄으로 후손들에게 나름 "라떼"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모르겠고, 기억해야할께, 생명이 피어나기 힘든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만났다. 이 한 문장으로,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설정되어집니다. 그런데, 후손들이 이를 잊어버리고,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나안땅으로 들어간 이후에 이스라엘은 늘 다른 이방신과 하나님 사이에 갈등이 있었고, 갑자기 좋아져 버린 환경에, 하나님을 잊어버리거나, 더 큰 욕망을 위해 다른 신을 향했던 이스라엘을 보면서, 소위 기억의 재생, "광야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다."라는 중요한 기억을 들춰냅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70년이 지났습니다. 한세대를 거의 넘어서는 시간을 보내면서,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이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기억되지 않지만, 그 의미와 그 속에서 희생된 분들을 기억해내려고 노력을 하죠. 요즘 위안부 문제로 한국이 떠들썩하고 있는데, 위안부에 대한 기억의 재생을 통해 우리들이 지향하는 방향은 그 역사를 기억하고 일본의 사과를 이끌어내려고 하는 우리들만이 갖는 특별한 DNA를 가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이해에서 출발하면, 호세아가 하나님을 기억하고 재생하려는 노력은 방향을 잃어버린 신앙의 방향을 바로 잡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신앙의 기억은 어떠세요? 옛날에 참 신앙이 좋았는데..에 머물면 안되고, 그때 그 신앙이 오늘날도 재생되어져야합니다. 기억하시고, 점점 더워지는 이 시간을 보내면서..아..원래 프레즈노는 더웠어..가 재생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재생되어져서 여러분의 삶에 자양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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