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3장: 주님안에 굳게 서있으면 월요일 화요일 개인적인 사정으로 데살로니가 전서 1장과 2장을 건너띄게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는 오늘날 데살로니키로 그리스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서양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적, 문화적 요충지였고,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었습니다. 대부분 바울 서신에 등장하는 도시들은 무역과 교통의 요충지입니다. 그러니 바울의 사역은 늘 도전적이었고, 다양한 문화 인종가운데서 "예수그리스도의 믿음"을 증거하는 특별한 사명을 고백했을 것입니다. 더불어, 바울의 이런 사역환경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누구보다도 빨리 더 넓은 지역으로 전하는 기회"였을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전후서는 바울서신중에 가장 먼저쓰여진 것이면서 신약성경중에서 제일 먼저 기록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학자들의 논쟁거리가 되기는 하지만, 보편적으로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는 초대교회가 당시에 어떤고민을 하고 있고 더불어 어떤 환경에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자료가 된다는 것입니다. 원래 데살로니가 전후서는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 1,2"라는 제목으로 쓰여 졌습니다. 바울이 직접 기록했는가? 에 대해서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기서 이런 논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선, 편지속에 두가지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 디모데를 통해 데살로니가 교회가 어려움 속에서 신앙을 잘 지키고 있다는 소식을 기뻐하며 이 편지를 기록합니다. 두번째, 당시 교회는 임박한 종말에 대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주님이 곧 오신다"라는 재림의 약속은 "언제 오시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주님이 오실텐데 하는 안일함으로 일도 하지 않고, 빈둥대는 젊은교인들을 향해 온전한 믿음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십자군 운동 당시에 데살로니가와 콘스탄틴 노플을 이어가는 중간 기착지로 활용했던 것처럼, 데살로니가 지역이 지리적으로 문화적으로 얼마나 중요했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본문 내용으로 짐작컨데, 바울은 고난가운데 있었던것 같습니다. 쉽지 않은 사역환경과 끊임없이 바울의 자질에 대한 지적은 바울을 매우 힘들게 했습니다. 우선, 바울의 사역의 성공이 유대인들을 질투심으로 몰아갔습니다. 이런 바울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유대공동체는 적잖은 소란으로 로마의 위정자들에게 바울을 주목하게 만듭니다. 당시 로마가 가장 조심했던 것은 "군중의 소요와 선동"이라는 점에서 바울은 충분히 주목받을 만큼의 상황이었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이야기한 어려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이 보낸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교회가 잘 견디고 있다는 소식은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언급한 아버지가 오실날은 바로 이렇게 든든히 믿음을 지켜낸 그리스도인들이 누리게될 축복이 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예수그리스도의 재림, 주님이 오실 임박할 종말의 개념은 막연하게 기다리는 시간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날을 소망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예배하고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갈때 비로소 맞이할 수 있는 영적사건입니다. 우리들의 삶도 구원과 천국이 내 삶에서 드러나는 축복이되려면, 내가 처한 상황에서 최대한의 역량으로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 온전한 방법입니다. 생각해보기 주님이 오십니다!를 어떻게 이해하고 계셨나요? 주님이 함께하신 삶을 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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