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츠고!
유진피터슨이라는 신학자는 20세기와 21세기에 대표적인 목회자, 신학자로 기억에 남을만한 저술을 남겼습니다. 그중에 메시지 성경은 성경을 지금 우리들 삶에 익숙하게 읽어내기 위한 노력의 산물로서 어렵고 지루한 내용을 내 이웃과 내 고뇌하는 삶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처음에 성경을 너무 가볍게 만든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지금은 성경을 그리고 기독교적 세계관을 하나님이 직접 우리들 삶에 녹여내는 문장으로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좋은 신앙적 지표를 세워주고 있습니다. 이런 대작을 우리에게 선물한 유진피터슨이 “렛츠고”라는 유언을 남기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가 던진 “렛츠고”, “이제 가자”는 자신이 새롭게 번역한 메시지성경에서 모세의 마지막 고별설교에 등장하는 유언입니다. 이스라엘을 성공적으로 출애굽시킨 모세는 “약속의 땅”이라는 하나님의 거대한 프로젝트를 이끄는 인물이었습니다. 40년의 광야생활은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거창하게 마무리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요단동편 모압평지에서 삶을 다합니다. 조금만 가면 약속에 땅에 발을 디딜 수 있는 모세가 약속의 땅을 바라보면서 고백한것은 “자기는 갈 수 없는 약속에 땅에 다음 세대와 이를 이끄는 여호수아가 성공적으로 가나안땅에 정착”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렛츠고”, “이제 가자”라는 말로 삶을 마무리합니다. 자신을 갈 수 없지만, 이스라엘은 그길을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출애굽이후 이스라엘은 불평의 연속이었습니다. 이 불평의 끝은 늘 모세의 무능을 밝혀내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모세는 부제라는 기능을 사용했습니다. 말이 부제이지 도망과도 같습니다. 하나님과 독대하는 것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전하는 자로서 모세는 이 불평의 숲을 뚫고 마침내 약속의 땅앞에 선것입니다. 마지막까지 이스라엘은 불평과 불확실성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이 불확실성은 이스라엘을 많은 경우의 수 앞에 놓이게 했습니다. 어렵다, 힘들다, 무섭다,두렵다 무수한 계산적이고 부정적인 문장들이 끊이지 않을때, 모세가 이야기합니다. 거의 다 왔는 나는 이제 못간다..너희들끼리 가라…렛츠고~! 이제가자! 믿음은 “가는 것”입니다. 머뭇하지 말고 그곳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죽음앞에 노 신학자가 한마디, 이제가자라는 유언을 남긴것은 죽음앞에 망설이고, 고난앞에 주저앉는 우리들의 삶을 다시한번 깊은 사유의 공간으로 몰고가기에 충분합니다. 이런점에 유진피터슨은 우리에게 영원한 유언으로 깊은 사유의 세계를 선물하고 간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교회가, 성도가 믿음의 능력을 잃어버린것은 계산이 많아서 입니다. 어떤 위치로 가야하는 지를 목적으로 삼고, 더 나은 공간을 꿈꾸는 것은 자연스러운 욕망이지만, 그리스도는 그 공간을 포기하고 가장 힘들고 어렵다고 하는 곳으로 스스로 오셔서 우리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들의 삶은 결국 이런 역설적 고백과 방향을 통해 성숙해집니다. 계산과 내다봄이 지혜인 이 시대에 우리들이 짊어져야할 책임은 “렛츠고” 그 길을 그저 걷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성도들이 깊은 사유와 질문의 자리로 나아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믿는 믿음은 좋은 믿음이 아니라 그 믿음을 위해 우리들이 어떤 책임을 짊어 질것인지에 대한 고백이 필요한 시기라는 것입니다. 질문없이 이 책임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렛츠고~! 이제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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