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의 힘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다. 나는 주님을 의지한다. 나에게 두려움 없다. 주 하나님은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이시다." 세상에는 "힘"이 많이 있습니다. 힘을 큰힘과 작은힘으로 나뉘어 부르기도하고 "에너지"로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힘"이야기하면 "빽"으로 이해할때가 많이 있습니다. "내 빽"이 누구냐에 따라 내 인생이 달라지기도 한다고들 이야기합니다. 한국에서는 공기업에 취업을 흔히 "빽"을 통해 했다가 낭패를 보는 것 같습니다. 이것을 조금 고상하게 표현하면 "라인"이라고 합니다. 누구의 라인, 혹은 누구의 줄을 잡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아마 전적으로 힘에 의존하고 그 힘이 좀더 나은 곳으로 이끌어 간다는 기대 때문에 흔히들 이런 "힘"에 의지하는 것 같습니다. 뭐, 정치, 직장에서만 이야기할것이 아닙니다. 교회도 이 "힘"의 논리에 지배를 받습니다. 세상이 바뀌어서 그런지, 십자가를 지신 예수그리스도의 종된 자로 부름받았다는 의미가 어떤 "힘"을 가진 것 처럼 이해합니다. 교회가 크면 더 "힘"이 있고, 큰 교회의 목사가 "힘있는 줄"이고, "라인"입니다. 세상사는게 어디 다르겠습니까, 하지만, 인간의 영역에서는 이렇게 구별하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지혜롭다고들 이야기하겠지만,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그 힘이 그 힘입니다. 부른종이 똑같은 부른종이고, 우리들이 믿음으로 고백하는 믿음의 상급이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이사야가 선언하는 "힘"은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제법 힘있는 가문 출신이었던(웃시야왕의 사촌 혹은 아마샤의 조카) 이사야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유다왕국을 바라보며, "힘의 덧없음"을 발견한것 같습니다. (시리아와 북이스라엘의 침공과 앗수르의 예루살렘포위등) 이때, 이사야의 고백은 "하나님 만이 나의 구원(힘)"이시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두려움도 없고,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이라는 고백이 이어집니다. 이사야가 고백한 "힘"은 우리들의 이해하는 "힘"의 개념과는 다릅니다. 사람들히 흔히 기대하는 힘은 현존하는 힘, 지금 바로 눈앞에 보이는 힘으로 이해되어집니다. 하지만, 이사야가 고백하는 힘의 방향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당시 신앙적인 표현은 "조건적인 성취"를 통해 이 힘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하지만,(회개하라~! 그러면, 구약의 반복적인 레토릭입니다.) 오늘 이사야가 선언하는 "하나님이 나의 힘"은 "존재"( Being)를 추구하는 힘이 아닌 "관계"(Relationship)의 힘에 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관계하기 원하십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예수그리스도와 십자가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계서서 우리를 구원하신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우리와 관계하시기 위해 이 거룩한 행위로 우리를 구원하신것입니다. 오늘 함께 올려진 "그림"은 "사도 와타나베"라는 일본 기독교 아티스트가 그린 그림입니다. 지금 Clovis에 있는 UJCC(일본교회) 담임목사 사무실에 걸려있습니다. 어제 잠깐 만날일이 있어서 방문했는데, 담임목사님 사무실에 이 사람의 그림이 5개나 걸려있었습니다. 아마 개당 작품가격을 메기면 $5,000을 넘어설 작품인데, "담임목사 사무실에 뭍혀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이지 않으면 없는것 과 마찬가지입니다. 보이게 하는 것이 우리들이 해야할 일인데, 우리들이 보여야하는 것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이것이 "힘"이라는 것이 보여져야합니다. 묵상 내가 지금 가장 의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내게 가장 중요한 힘은 무엇인가요? 숨겨져 있는 것, 혹은 꽁꽁 보여주지 않는것은 없나요?
0 Comments
Leave a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