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요한이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오. 그런데 여러분 가운데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이가 한 분 서 계시오.
27 그는 내 뒤에 오시는 분이지만,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 만한 자격도 없소." 사람을 알아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누구를 만나고 친해지고, 남녀가 사랑을 할때도 예외없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시간을 넘어선 특별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것도 시간이 필요해야 더 깊은 이해, 관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민교회에서 "관계"에 힘들어하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그 이유를 찾아보면, 이민사회에서는 많이 부딪쳐서 자기를 혹은 남을 깎아낼 시간이 부족해서 그런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늘 많은 사람들이 부딪치고 지내다보면, 자신의 한계 혹은 남의 한계, 공동체의 한계 늘, 새로운 것에 신선한(이것을 신선하다고 하지만, 스트레스겠죠) 자극을 통해 성장한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성장은 통증과 함께 진행되는 것이라고들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조금만 인내하면 관계를 좀더 편안하게 이끌어 갈 수 있는 지혜가 생기기 마련이겠죠, 오늘 말씀에 세례요한의 고백이 눈에 들어옵니다.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이"가 등장하는데, 우리 가운데 서 계시는 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는 이분의 신발끈을 풀 만한 자격도 자기에게는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주인이 외출해서 돌아오면, 종은 주인의 신발끈을 풀어냅니다. 그리고 발씻는 물을 준비하죠. 신발끈을 풀 만한 자격 이라는 말은 그러니까, 종보다도 못한 자신을 비유한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이런 대단한 분을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분이 우리 가운데 서 계신다는 것입니다. 드러나지 않고, 확인할 수 없지만, 이 분, (우리들은 이미 누구신지 잘할고 있죠)이 지금 우리들 가운데 서계시다는 것입니다. 사순절의 여정은 "이 알지 못하는 분"을 누구신지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했지만, 이분은 우리 가운데 서계시고, 요셉이 고백하듯 신발끈을 풀어낼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분이십니다. 우리안에 이 분을 찾는 시간, 거룩한 주님의 시간에 우리를 초대하셨습니다. 묵상 우리가운데 누가계신가요? 확실히 계신가요? 힘든 관계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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