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은 유대 사람인데,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유대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과 상종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벽"을 느낄때가 있습니다. 기운으로 느껴지는 이것은 웬만한 벽보다 든든해 보이고, 무너질것 같지않습니다. 이것은 마음의 벽입니다. 차별(discrimination)을 이겨내는 것은 힘이 구조의 변화밖에 없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차별중에 차별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일전에 말씀드린대로 사마리아의 역사성은 유대인에게는 어려움 벽의 존재와도 같습니다. 예수님이 그 중심에 깊숙히 들어가셔서 이 여인을 만난것은 우연이 아닌듯합니다. "상종"하지 않는 다는 표현은 "No dealings"이라는 표현입니다. "거래"를 안한다는 것인데, 당시에 기본적인 경제적 시스템이 "거래"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건 사람처럼 보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종교적 터부 혹은 종교적 오염이라는 존재로 사마리아인을 인식하는 유대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이 여인은 사마리안인 중에서도 따돌림 당하는 여인으로 보여집니다.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여인의 질문은 "유대인인데 왜 나에게 물을 달라는 걸까?" 입니다. 이 질문 속에는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 자체가 말도안된다는 시대적 관습에 익숙해져 있는 여인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유대인은 사마리아인과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라는 공식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오늘 "벽"이라고 보자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대화속에 이벽은 소멸되었습니다. 벽이 소멸되었다는 것은 "유대인인 예수님이 이 여인과 진지한 나눔을"이루었다는 것입니다. 보이지는 않는 벽을 허무는 것은 "관계"를 진행하는 것입니다. 사회적 편견 혹은 자존감의 문제등으로 세워진 벽을 허무는 것은 "관계"를 통해 가능합니다.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은 "관계"의 영역으로 나아가면서 전통적으로 자리한 "벽"을 허물어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내가 느끼는 벽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시고, 이것을 허물기 위해 어떻게 노력해야할지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묵상 보이지 않는 벽에서 내 위치는 어디에 있었나요? 벽을 세운 사람? 혹은 그 벽에 서러운 사람? 어떤 관계를 통해 그 벽이 사라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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