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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장

1/13/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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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장은 세부분을 나누어 읽을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기도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두번째는 금식에 대한 가르침이고 세번째는 믿음의 삶에서 은밀히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대한 내용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번째 기도에 대한 가르침에는 주기도문이 놓여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기도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외 기도하는 자의 태도는 금식의 태도와 다르지 않습니다. 편의상 세부분으로 나뉜다고 말씀드렸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내용으로 통하는데, 은밀하게 돌보시는 하나님으로 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는 것은 기본적인 욕망입니다. 우리들이 흔히 사치 혹은 치장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은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러데 하나님께 잘 보이게 (!?)하는 것은 조금 다릅니다. 아니 완전히 다릅니다. 은밀해야 합니다. 티가 나면 안됩니다. 과해서도 안되고(7절) 제법 신경을 써야합니다. 예수님께서 기존의 기도하는 사람들을 지적하십니다. 기도하고자 하는 마음이 이미 하늘에 닿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족한데,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하는 것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은밀한 중에 기도하라~! 이것이 기도의 첫번째 원칙입니다.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들이 고백하는 주기도문입니다. 헬라어는 주어, 동사, 목적어 등의 문법이 일정치 않습니다. 그래서 강조하고 싶은 내용을 문장 앞에 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익숙하게 낭독하는 주기도문을 조금 빠꿔서 보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라,
    거룩하시기 원합니다. 하늘에 계신 하님의  이름이
    임하여주세요 우리의 땅에,
    이루어지게 하소서 하나님의 뜻이
    양식을 주소서 우리가 하루 먹을 양식을
    용서하소서 우리의 빚(죄)을
    마소서 시험들지 않게, (김영봉 목사 제안)
    구하소서 우리를 악한자에게,
    주님에게 있는 줄 믿습니다.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토록

 익숙하지는 않지만, 주기도문의 내용은 명확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기도는 이와 같습니다. 첫번째,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그 거룩함이 우리가 사는 이땅에도 임하도록,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우리의 삶에 자리에서 이루어지게, 먹을 양식을 주시는데, 오늘 하루만 먹을 양식을(넘치거나 남길 수 있으면 안되는 단지 바로 하루만 먹을 양식) 시험들지 않게 하시고, 악한자들로 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고, 주님께 있는 하나님 나라(천국)의 권능과 영광을 믿고 믿음으로 살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끝나는 주기도문은 구체적인 우리의 행위로 이끕니다. 14절과 15절은 하나로 묶어서 이해하면, 우리가 서로 잘못을 용서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실 것이고요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용서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그러니 기도의 열매는 서로를 용납함, 서로를 인정함으로 변화시켜줍니다. 
 이어서, 금식도 기도와 마찬가지로 티를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이유는 18절에 말씀하 듯 은밀하게 그러면 하나님이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이 은밀함은 특별하게 연결됩니다.

   19절에서 20절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재물의 욕망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만 그 재물을 사용할것으로 해석합니다만, 실제로는 단순한 물질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21절에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라는 말 처럼, 우리의 욕망이 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사람들 눈에 띄게 기도하거나, 금식하는 행위와도 연결됩니다. 19절에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쌓아두지 말라는 것은 자기 스스로 자기 자신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말라는 것입니다. 보물을 예로 들어서 그렇지 실제로는 보물로 대표되는 자신에게 집중하는 모든 행위를 말합니다. 즉, 기도도, 금식도 티를 내면서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행위는 마치 도둑이 그 보물을 빼앗듯이 쉽게 빼앗길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쌓아둔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 은밀하게 하면 하나님 그 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는 말은 기도와 금식 (종교적 행위)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에 따라서 그 가치가 변한다는 것입니다. 22절에서 24절의 말씀을 보면 종국에는 같은 결론입니다. 바라보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 밝은 빛이 될지 어둠이 될지 결정되는데, 자신의 욕망을 향한 눈은 어둠이 되고 (보이는 기도, 보이는 금식, 보이는 종교생활) 은밀한 곳에 마음을 두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행위는 빛의 눈을 가졌을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4절에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해하면 물질을 완전히 포기해야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하지만, 실제로는 욕망의 끝이 어디에 있냐를 물어보는 것입니다. 눈에 띄는 곳인가? 아니면 은밀한 곳에 있는가?에 대한 물이라는 말입니다. 
  이어지는 염려에 대한 본문은 함께 이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단순히 물질을 걱정하지 말고 공중의 나는 새를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를 가꾸시는 하나님만 바라 보자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전체적인 문맥상 자기를 꼭 드러내서 가치를 드러낼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은밀하게 해도 하나님이 그리 잘 아실텐데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조바심이 염려속에서 출발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 염려는 우리를 조바심나게 합니다. 내 눈높이에 맞춰져야만 (눈에 띄는 혹은 드러내는 행위) 만족스러운데, 은밀하라고 하니, 조바심이 날 수 있습니다. 이게 과연 옳은가? 라는 의구심이 들 수 있습니다. 누구나 같습니다. 세상의 삶도 그렇고 교회의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이런 조바심은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이런 조바심에 대한 도움을 위해 예수님께서 33절에 말씀하십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고 "내일일을 오늘에 근심하지 말라" 이 조바심을 이겨내는 방법은 우선순위에 대한 확신과 미리 걱정하고 근심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이 조바심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신앙적 조바심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도개인과 율법주의자들을 만들어냅니다. 꼭 기억하시고 평화로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은밀한 기도"에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생각해보기
1. 기도를 드렸다면 주로 어떤 기도를 드렸나요? 간구였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음성을 듣기 위함이었습니까?
2. 새롭게 해석한 주기도문을 읽으면서 기도의 생각이 바뀌셨나요?
3. 우리안에 조바심을 이끄는 욕망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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