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이야기는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물질이 우리의 목줄을 메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당연한듯합니다. 누가 뭐래도 "돈"이 가진 힘을 절실히 느끼며 살아가고 있으니, "헌금"이 마치 "돈"을 초월하여 살라는 말로 들릴 수 있으니 그럴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라고 "돈"에 문제가 없었을까요? 어느시대나 부담되는 것은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구약의 십일조 개념이 헌금의 중요한 이해를 차지하죠, 그런데 신약에서는 십일조 이야기가 없습니다. 특히 초대교회에서는 십일조가 아니라, 연보를 드렸습니다. 대부분 미국교회가 연보 ( Pledge)를 드리는 이유는 바로 이 전통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장에 이 연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구제와 가난한 자를 돕는데 이 연보를 사용했고, 이것을 조심스럽게 사용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 연보를 드릴때, 많던지 적든지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니, 헌금은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고 "구제"와 "가난한자"를 위해 드리는 것으로 이해해야지 십일조의 개념으로만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십분의 일이 되지 않는 헌금을 드리는 것도 기쁜 마음으로, 혹은 구제와 가난한자를 위해 십분의 이 혹은 그 이상을 드릴때도 기쁜 마음으로 드리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래서 헌금을 많이 드리면 하늘의 상급이 클것이라는 기대보다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헌금"의 바른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댓가없이 받은 사랑도, 댓가없이 나누는 사랑으로 표현하는 것이 우리들의 할일입니다. 그중에 하나가 "헌금"입니다. 이런 이해로 드린다면, 물질에 목줄메는 삶에서 자유롭겠죠... 더불어 글 하나 나눕니다. " 오, 주님 제가 주님을 섬김이 지옥의 두려움 때문이라면, 저를 지옥에서 불살라 주옵시고, 낙원의 소망때문이라면 저를 낙원에서 쫓아내 주옵소서. 그러나 그것이 주님만을 위한 것이라면 주님의 영원한 아름다움을 제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이해관계없는 사랑 성녀 라비아)
0 Comment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