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와 부끄러움
1. 망하고야 말 도성아, 반역하는 도성, 더러운 도성, 억압이나 일삼는 도성아, 4. 예언자들은 거만하며 믿을 수 없는 자들이고, 제사장들은 성소나 더럽히며 율법을 범하는 자들이다. 5. 그러나 그 안에 계신 주님께서는 공평하시어, 부당한 일을 하지 않으신다. 아침마다 바른 판결을 내려 주신다. 아침마다 어김없이 공의를 나타내신다. 그래도 악한 자는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구나! 날이 따뜻해졌습니다. 새벽기운도 제법 포그하게 느껴지는 오늘입니다. 햇살도 따사롭고 그 가운데 멀리보이는 눈덮힌 산을 보면, 환상적인 곳에 우리들이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몇일 지나면, 아마 덥다는 투정이 나올겁니다. "벌써 더우니, 여름에는 어쩔려고"하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하면, 여름을 준비해야합니다. 이렇게 될 줄 알더라도, 오늘 하루를 감사하고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산에 쌓인 눈을 보기위해 평소보다 조금만 더 올려보시기 바랍니다. 프레즈노에서 짧지만 가장 강렬하게 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이 가장 좋은 시간에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합니다. 이스라엘의 기후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의 기후가 비슷합니다. 마른 광야에 겨울에 물기들이 생명을 일으키고 가장 클라이막스일때 광야가 푸르고 꽃이 핍니다. 이런 절정의 시간에 우리들이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하고 회상합니다. 세상이 가장 아름답다고 느낄때,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한다는 것, 그것은 고난이 곧 우리들을 위한 하나님의 극적인 생명사건임을 알려주는듯 합니다. 생명을 일으켜 대지를 푸르게 하듯,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이 죽은 우리들을 살려냅니다. 오늘 본문은 스바냐에서 읽습니다. 스바냐는 히스기야왕의 4대손으로 왕족출신 예언자입니다. 북이스라엘은 이미 멸망했고, 남유다가 멸망직적에 유다의 멸망과 이웃나라의 멸망을 예언한 예언자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스냐는 제사장과 예언자들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종교적 퇴락과 무능이 유다를 멸망케 함을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날로 하면, 교회와 성직자의 무능이 어떻게 나라를 망치는가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바냐가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서도, "주님이 공평"하시다고 선언합니다. 바른 판결을 내리시어 "공의"를 나타낸다고 말씀하십니다. 공의에 대해 영어성경은 "Justice of light"라고 번역했습니다. 이걸 한국어로 직역하면 "빛의 정의"인데, 이것은 빛이 공정하게 이 땅을 비춘다는 의미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의는 빛과 같아서 공평하게 악한자들에게도 선한자들에게도 함께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인은 부끄러운줄 모른다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악"의 정의는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것을 말합니다. 부끄러워할 줄 알고, 내가 죄인임을 깨닫는 것은 하나님의 의로움에 노출된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부끄러울줄 모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이 이 세상모두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라고 말씀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공의"롭기 때문입니다. 모두에게 은혜를 주시고, 모두에게 생명을 허락하십니다. 악은 바로 이런 허락과 은혜를 모른다고 하듯이 부끄러할 줄 모르는 것을 악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순절에 좋은날을 느끼고, 하나님이 똑같이 "공의"하신 분이라는 것을 묵상하는 것은 이런의미에서 하나님의 깊은 은혜의 손길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묵상 혹시, 하나님의 은혜가 나에게는 피해간다고 느낀적은 없으신가요? 부끄러움을 모르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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