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11장
"에브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원수의 손에 넘기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처럼 버리며, 내가 어찌 너를 스보임처럼 만들겠느냐? 너를 버리려고 하여도, 나의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구나! 너를 불쌍히 여기는 애정이 나의 속에서 불길처럼 강하게 치솟아 오르는구나."(8절) 관계를 끝낸다는게 쉬운게 아닙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만들어질때, 어찌 그냥 이루어졌겠어요. 두 사람일 경우는 한 사람이 희생을 했거나, 호의를 베풀었거나, 이에 대한 응답으로 다른 사람이 고마워하고, 마땅한 도리를 함께 주고 받았을때 관계가 세워지는 거겠죠. 이렇게 세워진 관계가 무너진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요즘에, 슬의생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라는 드라마를 보는데, 이 드라마의 특이한 점은 20살에 만난 친구들이 20년넘게 같은 우정을 나눈다는 겁니다. 악한 케릭터하나 없이 서로가 서로를 선의로 대하는 것이 이 드라마의 특징입니다. 아무래도 연출자는 이런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던것 같습니다. 현실은 우리를 냉혹한 경쟁과 시기와 질투로 내몰지만, 살아보면 이런것들이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고, 우리들의 삶을 움켜쥔다는게 억울한거죠. 나름 품위있고, 서로가 서로를 잘 배려하며 20년 넘게, 여기서 어떤 케릭터는 어릴때부터 노년이 되어서까지 특별한 우정을 나누는 것을 보여주죠. 하나님이 호세아를 통해 끊임없이 죄를 지어대는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끊어낼 수 없음을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은혜이고, 하나님은 은총을 베푸시는 건데, 구약에서 이런 하나님의 이미지는 끊임없이 갱신됩니다. 두려워서, 마치 하나님은 늘 우리를 심판하시려고, 벼르고 있는 듯한 그런 분이 아니라, 우리를 끊임없이 사랑하시고 이 관계를 이어가실 분이라고 이야기하죠. 성경전체 바로 이런 맥락이 있습니다. 현실에 우리 관계, 다른 공동체는 볼것없고, 교회는 어떤 지 한번 살펴보면 아찔합니다. 세상이 그어놓은 경계를 교회안에서도 그대로 사용하는 분들도 있고, 제 친구들과의 관계만 보더라도 20년이 지나서 계속 연락을 주고 받거나, 삶을 나누는 친구들이 별로 없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삶이 녹녹치도 안고, 저마다 생각이 다르니, 생각다른 친구와는 손절하는게 요즘 분위기인듯합니다. 긍휼함을 입은 삶은 그대로 긍휼함을 나누며 살아야겠죠. 이게 우리안에 중심에 없으면, 무너지고 마는 겁니다. 그리스인의 삶이 그리고 교회가...
0 Comments
Leave a Reply. |